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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국립공원 지정. 한국팔경 중의 하나인 속리산은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여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1057m인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다.
보은의 얼굴로 일컬어지는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으로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창건 이래로 여러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성덕왕 19년(720)과 혜공왕12년(776)에 중창하였는데 이때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곳 법주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는데, 그중 국보만도 석 점이다.
1464년에 신병에 고통받던 세조가 온양온천과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가던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리려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스스로 하늘을 향하여 무사히 통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서울로 돌아갈 때는 마침 쏟아지는 쏘나기를 이 나무 아래서 피할 수 있게 하여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내린 전설이 깃든 나무이다.
옛부터 이 고개길에 넓고 얇게 뜬돌,즉 박석을 깔아 놓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박석은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엷은 돌들은 3~4리나 깐 것이라고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말티고개라는 현재의 이름은,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에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 된다.
이 성은 470년에 축조되었으며 486년에 개축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보은이 삼년군, 삼년산군,으로 불렀기 떄문에 삼년산성으로 불린듯하나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데 삼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는 이 지역의 확보를 토대로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 뒤 김헌창의 난 때 거점지로 이용되었고 918년왕건이 이곳을 직접 공격하다가 실패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신라 36대 헤공왕 때 진표율사가 청동으로 주조하여 1000여 년간 내려왔으나 대원군에 의하여 「당백전」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철되고, 그 뒤 1939년 시멘트 불상으로, 1990년 청동미륵대불로 이어지다가 현재의 금동미륵대불은 80㎏의 순금을 들여 2002년 6월 5일 완성되었다